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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소성리에서 열린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범국민대회에 다녀왔습니다.

도덕쌤 2017. 3. 19. 21:11

전기호목사님은 애초에는 대구에 친지 혼사와 모처럼 만나는 친구들 약속이 있어서 성주로 향할 계획이 없었습니다만, 유성일목사님이 장애우들까지 데리고 가족행사를 간다니까, 거창에서 성주 초전면까지 가는 길이 대중교통으로는 어렵다며 약속을 바꿔가면서까지 저와 동행이 되어주셨습니다.

성주에서 거창으로 오늘 길은 지난 여름 지역순례를 하면서 한 번 경험했던 길이었는데, 저녁 어스름에 직접 운전하며 오던 길과 그냥 편히 앉아 조수석에서 보는 경치는 확실히 다르더군요. 가조면 근처의 우두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성주 초입의 식당에서 돼지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양과 질이 만족스러웠어요.


초전면이 다와가는데 은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팀은 농소면쪽에서 올라가 월곡리에서부터 걷는다네요. 그러고보니 오늘 성주 사드반대촛불은 남쪽 초전면에서부터 행진하는 팀과 북쪽 농소면쪽에서 행진하는 팀, 두 대열이 있었던 겁니다. 예수살기는 향린교우들과 북쪽에서 오는데 전목사님과 나는 남쪽으로 가고 있었던 거죠. 거창쪽에서 참여하는 동지들은 초전면 방향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아무튼 초전면 농협하나로마트에 차를 주차하고 평통사깃발을 찾아갔습니다.

정확하게 때맞춰 도착했기에 행진은 바로 시작되었지요.


동포리마을회관 조금 못미쳐서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원주에서 내려오신 김규돈신부님과 대구의 백창욱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소성리에나 가야 만날 수 있을까 했던 예수살기 동지들을 여기서 만나니 더욱 반갑더라구요.

조금 가니 마을회관 앞에서 주민분들이 춤으로 행진참가자들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 분들은 곳곳에서 피켓과 음료와 떡 등을 준비하고 열렬히 촛불시민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월곡저수지에 이르러 요구르트로 기운을 북돋고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행렬에 들어서는데 대전에서 오신 김철호목사님과 김옥연교수님 부부와 다솜교회 장철원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전목사님이 화장실 다녀오는 동안 저만치 앞서 가고 계셔서 부지런히 그 뒤를 쫓느라 혼자 바삐 걸어갔지요.
벽소로를 따라 고갯길을 올라가니 저만치 농소면쪽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 보였습니다.
멀리서 보니 향린교회의 깃발이 보이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이제 예수살기를 찾아간다고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겨우 따라잡은 곳은 소성리저수지가 가까이 보이는 곳이었어요.

사진에서 예수살기 깃발이 잘 안보이는데 이쯤에서 발견하고 힘을 내어 달리다시피 했지요.

겨우 쫓아가 은총의 얼굴을 확인했는데, 은총은 피로가 심했는지 따라가던 차에 몸을 싣더라고요. 나중에 알고보니 문규현신부님의 차였습니다.

아무튼 거기서 예수살기의 본진과 합류했고 김해성님, 박진옥님, 오재석간사, 양재성목사님, 한현실집사님 등등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소성리 마을회관까지는 금방이더라구요.

마을회관앞 도로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모아 사드배치가 철회되기를 기도하며 집회를 마무리하고 이제 골프장 앞으로 행진할 때가 되었는데 고민이 되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데, 전목사님도 내일 설교준비를 위해 일찍 거창으로 돌아가셔야 했고, 숙소에 홀로 남은 할머니도 오늘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혼자 라면만 끓여먹고 계실 것을 생각하니 거창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거창으로 돌아가는 길은 대중교통도 끊어지고 다음날 아침에 출발해야 하는데, 어쩔 수가 없었지요.

모두 뒤로 돌아 행진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무대뒤에 마련된 셔틀버스를 타고 초전면 하나로마트로 향했습니다.

거창에 도착하여 전목사님과 식사를 하는데 카톡으로 골프장 앞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진밭교 앞에서 철야연좌농성을 하던 원불교교무님들의 천막이 경찰들에 의해 무너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나라 경찰들인지!

끝까지 남아서 싸우던 동지들이 올려준 사진 몇 장을 통해 그 현장을 소개합니다.



















다행히 예수살기, 향린, 평통사 버스 한 대의 동지들이 끝까지 남아 작은 천막이지만 천막을 다시 세우고, 경찰과 대치하며 경찰의 불법침탈을 규탄하며 경찰의 천막 철거가 불법임을 각인시켜주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오니 개들이 반갑다고 덤벼들고, 할머니도 다시 와줘서 고맙다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혼자 밤을 보낼까봐 두려웠던 모양이더군요.

정리하고 나니 동지들도 이제 서울로 올라간다는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면 12시가 넘어 날이 바뀔 텐데, 집이 먼 분들이 걱정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한민구가 사드배치에 관해 미국과의 합의문서라는 건 없고, 미군이 설치하려고 하면 설치하는 것이라는 식의 얘기를 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이 나라는 아직 군사적으로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형편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마침 조선인 최초의 경찰서장 윤종화에 관한 글이 올라와 있기에 댓글로 화풀이를 했습니다.

"슬픈 이 역사!

해방후 이런 역사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미국이란 사실을 기억한다.

해방군을 환영한다고 인천부두로 마중나온 환영인파를 향해 총을 쏴 사상자를 발생시켰던 미군. 그 미군이 일본식민지 관료들에게 계속 하던 일 하라고 명렁하였고 독립운동하던 세력들은 아무도 새나라 새질서를 세우는 일에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

상해임시정부는 개인자격으로 귀국해야했고 건국준비위 조직은 해산시켰다.

유일하게 이승만만 대대적으로 환영했을 뿐.

그 이승만이 친일파를 온존시키고 새나라의 중심으로 계속 키워갔다.

그 미국이 지금 우리에게 사드를 막무가내로 들이밀며 또 다시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