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변절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투쟁의 열매를
스스로 누리겠다는
아니 한 걸음 양보해서
내 자식, 내 손주들이 누리게 하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는 ㅡ 말을 들었다.
아마도 심리상담을 받고 안정제를 복용해야 할 만큼 정신이 피폐해졌던 어떤 인간도 그랬을 것이다.
생존에 대한 위협보다도 니 자식, 니 손주들에게는 이 살벌한 세계에서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줄 울타리는 만들어 줘야 할 거 아니냐는 속삭임에 넘어갔을 거다.
그래서 투쟁의 언어를 뱉어내던 사람들이 제국의 언어를 구사하며 저 악마들의 변호사가 되었을 거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 23:15, 새번역)
오늘날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적그리스도의 주구로 살아가는 무리들처럼, 자신들의 투쟁이 어느 덧 자신들의 그 소박한 욕심 때문에 변질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겠지. 그리고 변절자의 길을 걸어가겠지.
투쟁의 열매는 무엇인가?
투쟁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소박한 욕심마저 죄가 된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 것인가?
오늘의 화두선은 여기까지.
+++++
(2025.01.14 덧붙임)
이 글을 쓰고 한 달쯤 지난 2024. 2월 저는 이 글로 인해 여러 가지 오해를 받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소성리에는 주민들의 심리적 지원을 위해 상담전문가들의 활동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저도 상담을 받았는데 자살 징후가 보인다며 우울증 상담을 받았습니다. 따로 약을 처방받은 것은 아니나, 이전부터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필요할 때 먹으라고 하여 보관중인 몇 알이 있었어요.
윗글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안정제를 복용해야 할 만큼 정신이 피폐해졌던 어떤 인간'이라는 표현이 주민들 중 한 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받았고, 자식, 손주들이란 표현은 그 오해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저는 이 글이 어떻게 쓰게 된 글인지 설명했습니다만 제 설명을 들으려하지도 않았답니다.
이제 여기에 그 변명을 덧붙여 둡니다.
이글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제가 앞에서 보여드린 12월 10일 페북글에서 “그 다음은 이제 그 마귀가 어떻게 우리를 분열시키고 있는가 까지 얘기하고 싶다. 마귀들이 먹이로 삼고 있는 것들이 내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반성해보자고 말하고 싶다.”고 마무리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서 얘기하는 반성의 결과물이 1월 4일 글이기 때문입니다.
이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변절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투쟁의 열매를 스스로 누리겠다는 아니 한 걸음 양보해서 내 자식, 내 손주들이 누리게 하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는 ㅡ 말을 들었다.] 이 말은 가진 돈도 없이 ‘어깨동무씨동무-평화연대자의 집’이라고 이름붙인 집을 지어놓고, 이 집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제가 죽으면 누구에게 물려주나ㅡ라는 문제를 두고 갈등이 생길 때 어떻게 하냐 고민하고 있을 때, 사돈이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욕심이 집을 지은 목적을 배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경고였지요.
아무튼 제게는 이 말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oo씨의 글로 상처를 받은 저는 그 동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많은 작은 상처들이 되살아났고 기껏 지은 집을 팔아넘기고 소성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집까지 지어가며 소성리 사드 투쟁에 올인했던 그 마음, 이런 마음의 패배인지, 좌절인지, 변절인지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 마음안에 도사리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들이 마귀들의 먹이가 되어 저를 이렇게 내몰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그러한 반성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것도 완성된 글이 아니고 ‘오늘의 화두선은 여기까지’라고 마무리한 것처럼 계속해서 반성해나갈 주제였지요.
‘심리상담을 받고 안정제를 복용해야 할 만큼 정신이 피폐해졌던 어떤 인간’이라는 표현이 △△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피폐해져 가고 있었고, 권력의 폭압과 회유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 글에는 “그래서 투쟁의 언어를 뱉어내던 사람들이 제국의 언어를 구사하며 저 악마들의 변호사가 되었을 거다.”라는 말도 들어 있는데, 적어도 소성리에서 함께 싸워온 동지들 중에는 아직까지 이 지경까지 간 사람들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그저 소성리를 떠나고 싶었던 제 마음, 그래서 누군가 소성리기도소를 이어갈 후임자를 만들어내고자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던 지난 연말연시의 제 행적에 대한 반성의 글이었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소성리 할매들의 투쟁 명분 “내 자식 내 손주에게 전쟁기지를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소박한 투쟁의 이유 아니겠습니까? 제 뇌리에 박힌 “변절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투쟁의 열매를 스스로 누리겠다는 아니 한 걸음 양보해서 내 자식, 내 손주들이 누리게 하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잘못 적용하면 소성리 할매들의 투쟁 명분마저도 변절의 이유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게 옳은 생각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마지막 세 개의 질문을 던진 채 “오늘의 화두선은 여기까지.”라고 마무리했던 글입니다.
누구는 투쟁의 대열에 함께 하지도 않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태도로 우리의 투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떡과 우리가 투쟁의 열매라고 생각하는 것이 같은 것인가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투쟁의 열매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소성리 할매들의 투쟁 명분이 정당하다고 믿기에 “그 소박한 욕심마저 죄가 된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 것인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의 개똥철학 > 나의 신앙고백(기도, 묵상,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 그 분은 어떤 분이신가? (1) | 2025.01.13 |
---|---|
당신들이 만난 '하나님'은 맘몬이었소 (1) | 2024.11.17 |
제목만 기억하고 있는 책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0) | 2023.12.09 |
누구를 마귀라고 생각하는가? (전쟁귀신 몰아내는 기도, 함께합시다) (0) | 2022.02.23 |
무엇을 보러 나갔느냐? - 달마산 해맞이 기원 (2022.01.01) (0) | 2022.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