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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사람이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보고 있다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몫이나 챙기자는 얘기다.
그런데...
남의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어야 할 굿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치러야 할 굿이라고 자꾸 들볶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로 그런 이들은 굿을 하는 무당보다는 옆에서 박수치는 구경꾼 역할을 하는 이들일 때가 더 많다. 그들은 내게 박수치며 구경할 판을 하나 더 벌이도록 값을 내라고 무섭게 설득하는 것이다.
무심코 거리 공연을 구경하다가, 구경값을 치르지 않으면 도저히 걸음을 뗄 수 없도록 강요당하는 셈이다.
말을 꺼내고 보니 새삼스레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
ⓐ 중학교 2학년 말쯤 어느 날, 극장에서 '메리 포핀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입장 전에 입구에서 행운권을 나눠주더니, 상영 전에 웬 사람들이 올라와 화장품 선전을 하며 행운권 추첨을 했다. 내 번호가 당첨되었는데, 화장품을 무지막지하게 할인된 가격에 사라고 했다. (지금 기억은 없지만 아마 10만 원쯤 되는 것을 5천 원이나 1만 원 정도에 사라는 얘기였을 것 같다.) 나를 교회로 인도한 선생님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막 신혼 때였는데, 그 사모님이 나를 누님처럼 보살펴주었다. 사모님께 선물로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덥석 그 화장품을 샀다. 그때 내게 무슨 돈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무슨 돈으로 영화를 보고 화장품까지 샀을까? 그때쯤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가? 아무튼 화장품을 사서 사모님께 드렸는데, 기가 막혔다. 사모님 왈, "어이구, 이 순진한 녀석! 날 생각해 준 건 고맙긴 한데, 넌 사기당한 거야. 이 화장품은 독이나 마찬가지야."
ⓑ 재수할 때의 일이다. 학원으로 오가는 길거리에 박보 장기판을 벌여놓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들이 있었다. 야바위판보다는 나아 보였기에 가끔 기웃거리다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어느 날 내가 알고 있는 박보 문제가 나왔다. 풀이를 알고 있다는 마음에 옆에서 훈수하듯 한마디 했는데, 훈수를 받은 이가 "네가 직접 돈을 걸고 도전해라"라며 부추겼다. 장기판을 벌여놓은 사람이 "당사자가 아니면 끼어들지 말라"고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결국 내기에 도전했다. 이미 내가 풀이를 알고 있음을 눈치 채고는 슬쩍 기물 하나를 바꾼 뒤, 그 문제에 도전하라고 했다. 덥석 미끼를 물었다.
이런 기억들이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어떤 점에서 굿판과 유사점이 있어 떠오른 건지 나도 모르겠다.
굿을 보는 데까지는 무임승차가 가능하지만, 떡을 먹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던 걸까?
굿판을 보며 감흥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가 "너도 한판 굿해봐"라든지, "너도 이 굿판에 끼어봐. 단 참가비는 어느 정도 내고"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얘기인가? 그리고 그 말에 넘어가 굿판에 끼어들었다가 바가지를 썼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거리에서, 그러니까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서 공연을 펼치고는 관람료를 내라고 윽박지르는 무리들이 있다.
윽박지르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적으로 그냥 지나치면 곤란하지. 이런 공연을 보고 내심 즐거움을 느꼈으면 작은 정성이라도 보이는 게 도리 아니겠나? 그냥 가면 양심이 없는 거지." 정도로 속삭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나와 같은 이들, 그러니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사람,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보고 있다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몫이나 챙기자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그렇게 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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