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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 made in USA] 평화봉사단으로 온 원어민 영어강사가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더니 그 영어 철자 가지고 가장 많은 단어를 생각해 낸 학생에게 선물을 준다며 게임을 시작했네.나는 7개의 단어를 생각해내서 선물을 받았지. 얼레빗이었어. made in USA ! 파란색 투명한 플라스틱 얼레빗이었네.머리카락 빗어 넘기는데 특별한 뭐가 있는 건 아니었어.다만 빗살을 손가락으로 훑어낼 때 소리가 청명했었지. 띠리리링!빗이 아니라 장난감 악기였다고 할까? 집으로 돌아와 특별한 상 받았다고 자랑을 했네.가족들이 내게 물었네.그 빗, 누구에게 줄라고? 나는야 까까머리, 빗을 머리카락 하나 없는 중학생.누구에게 줄라고? 나중에 장가가서 신부에게 줄 거다! 가족들이 모두 폭소를 터뜨렸지.그러나 그 중..
1. 서문 오랜만에 형님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쉽게 진전되는 대화는 아니지만, 그냥 "정치적인 이념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지만, 그래도 형제를 서로 이해는 해보자고 어려운 중에도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블로그에 [보수 유투버에 귀 기울이는 형님께]라는 이름의 카테고리를 개설하고 글을 올렸었습니다. 2020년 1월부터 고작 7개의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고, 오늘 이 편지글까지 8개째입니다. 형님은 이렇게 글을 써보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글을 쓰면 카톡으로 링크를 보내드렸던 것 같은데, 지금 남아 있는 카톡의 기록은 2020년 11월 말의 기록이 최초이니 확인할 수가 없네요. 어쨌든 [비공개편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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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모르는, 이름을 알 수도 없는, 알고자 할 필요조차도 없는 씨알 여러분! 하늘의 맑음, 땅이 번듯함 속에 안녕하십니까? 물의 날뜀, 바람의 외침 속에 씩씩하십니까?” 함석헌 선생이 ‘씨알의 소리’ 1974년 6월호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인사말이다. 긴급조치가 발령되어 엄혹했던 시기, 모두가 숨죽이고 살 수밖에 없던 때 그는 독자들의 안부를 묻는다. 그냥 잘 있느냐는 인사가 아니라 정신이 살아 있냐고 묻는 것이다. 그때로부터 꼭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인사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으밀아밀 계엄을 모의하고 실행한 이들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어둠은 치밀하고 끈질기고 강고하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물의 날뜀, 바람의 외침 속에서 씩씩하게 일어선 이들의 존재가 그 증거..
[안경 낀 이들에 대한 나의 편견] 이른 아침 골목길을 이주민 소녀가 지나갔네 동남아 어디쯤에서 온 소녀일까 말을 걸지 못했지만, 걸고 싶었네 어디서 왔니?무슨 일을 하고 있니?이 땅에 와서 무엇을 깨달았니?차별이 배어 있는 이 땅에 와서 네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평소엔 그냥 지나쳐 넘길 일상인데 순간, 이게 무슨 감정인지내 안을 들여다 보았다네 그때서야 소녀의 안경이 보였지유리알을 통해 보이는 맑은 세상, 맑은 눈 안경 낀 소녀의 모습이말이 통할 것 같다 느껴졌나봐,... 왜 그랬을까?세상 윤곽이 흐릿해지고 상대방의 얼굴이 몇 겹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도 안경을 쓰기 시작했었네안경을 낀다는 것 세상을 명확하게 보고 싶다는 얘기 아닌가?세상을 바로보고 싶다는 것진실을 추구하는 선한 본성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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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위 얼굴 얘기를 국민학교에서 들었다. 호손이라는 사람의 동화같은 얘기였지. 그 얼굴을 닮은 사람 나타나 세상을 인자하게 감싸주기를 기다리며 날마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했지. 바라보고 또 바라다 보는 중에 그 얼굴을 닮은 사람이 되었다 했어. 그러나 바라보고 바라다 보는 대상이 큰바위 얼굴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미워하고 또 미워하며 사라져라 사라져라 죽도록 싸워 온 대상 그 악귀 같은 얼굴들을 지겹도록 바라보며 싸워 왔구나. 어느 새 그 악귀 같은 모습나에게도 새겨져 있었구나.어느 새 그 짐승 같은 모습이나에게도 새겨져 있었구나.흐르는 피눈물 닦아내며 기도하노라.싸우다가 닮아간 악귀같은 모습 벗어던지고성현들의 모습만 닮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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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 대첩?을 유투브 라이브 채널을 여러 개 띄워놓고 보고 있었다. 트랙터가 깨지고 농민이 끌려나오는 장면, 경찰들 중에 체포조가 투입되어 참가자들을 끌어가는 장면, 몇 시쯤이었나 잠깐 길을 열어줄 듯 하면서 사당역에 몇 겹의 차벽을 세워놓고는 시민들과 농민들을 분리하려던 움직임 등등 혈압을 올리게 하는 장면들을 보며 답답했지만, 한강진역까지 겨우 10대의 트랙터가 갔다가 극우보수 전광훈부류와의 충돌을 꺼렸는지 우리가 이겼다 하고 해산하는 장면을 보며, 그래 그래도 이기긴 했어, 긴 동짓날밤을 새운 피로를 풀었다. 곧 잠들었지.남태령에서 본 수많은 시민들의 후원과 헌신, 청년들의 자유발언을 들으며 눈물겨운 감동을 느끼면서, 이제 나는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나 물러나기 전에 극우 유투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