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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백 (66)
친구들의 격려 방문

거의 두 달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자괴감 때문이었을까,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제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어디서 시작된 상념인지 알지만 고백하기 힘들다. 아무튼 그렇게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갔는데구속기간의 산정 방법을 핑계로 윤가 녀석이 석방 된 후 매일 저녁 광화문에 나가다가 드디어는 예수살기도 광화문에 천막을 치게 되었다는 소식에 지킴이로 나서게 되었다.토요일마다 만나던 고등학교 동기들에게 나는 여기 있다고 알렸더니 졸업후 금산에서 처음 만났던 친구가 격려방문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매일 집회현장에서 만나는 신변의 안내로 셋이 어울렸다. 내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예수살기라는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촛불교회라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궁금해해서 짧게 설명해 주었더니 감탄하면서 작게라도 후원하고 싶다고..

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2025. 3. 14. 07:49
제 학력은 고졸입니다. 학벌은 S대라지만.

나는 나의 진정한 학력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누군가 학벌이나 학력에 대해 얘기하면, 마지못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슬쩍 진실을 고백하곤 했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내가 부끄러움을 감추려면 단답형 대답 대신 긴 설명을 해야 했는데, 사람들은 종종 내 대답을 오해했다.학벌과 학력에 대해 얘기하는 게 왜 부끄러운가?나는 대학에 들어갔었다. 그것도 재수를 해서.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졸업할 때까지 교수들의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았고, 전공 서적 하나 읽어본 적이 없다. (↙ ⓐ)대학 4년 동안 배운 것이 없으니, 나의 학력은 고졸이라 해야 한다.그러고도 대학을 졸업했다고?그래, 졸업뿐 아니라 (↙ ⓑ)  교사 자격증도 받았고, 심지어 의무발령제 덕에 교사로 취업까지 했다. 대학 시절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했으니, ..

삶의 고백/사진으로 엮는 자서전 2025. 1. 17. 08:51
안식년을 마치며

[안식년을 마치며]    지난 목요일 아침, 제가 7년 넘게 싸워 온 소성리 마을에 검사들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목요일 평화행동을 하는 날이었는데, 추운 날씨와 얼어붙은 길이 걱정되어 피켓팅만 하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틈을 타, "사드를 이곳에 못 박은 정권의 수뇌부가 사드 배치를 지연시키려 우리들에게 비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소성리 사람들의 핸드폰과 각종 자료를 압수해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사이에 우리가 그토록 막으려 했던 사드 기지 운용을 위한 유류 공급 차량(항공유를 가득 실은 미군 차량)과 미군을 태운 버스들이 유유히 지나갔습니다. 초기에는 이런 차량들이 모두 주민들과의 갈등을 피하려 헬기를 이용했었는데.    소식을 듣고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여..

삶의 고백/소성리 사드저지기독교현장기도소 2025. 1. 13. 15:24
악질 마름 쫓아내고 조금 순한 마름을 세우고 싶은가?

윤석열이 드디어 탄핵되었다. 국회방송을 통해 역사적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았다.'가 204표'라고 발표되는 순간 전국 곳곳에서 특히 여의도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을 떠올리며, 오늘밤은 축제의 밤을 즐기겠구나, 마치 수능시험 끝내고 나온 수험생들 같은 심정이겠구나 생각했다.나는 사드배치반대 김천촛불 응원의 날 행사에 참여하여 오랜만에 동지들과 시간을 보냈다. 모두  탄핵을 기뻐하며 사드를 쫓아보내는 데까지 나아가길 기도했다.그렇다. 오늘의 탄핵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겠지?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동안 여러 뉴스와 SNS를 통해 올라오는 글들을 살펴보다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많은 이들이 오늘 탄핵으로 우리의 투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한다. 그런데 대부분 윤석열과 ..

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2024. 12. 15. 04:14
우울한 상상 (내란수괴 윤석열을 체포하라, 목 터져라 외쳤지만...)

[윤석열 탄핵 촉구 시국 기도회]가 기독교회관 앞에서 있었다. 오후 1시 예정되어 있는데, 대규모 집회의 경우 늘 교통체증이 발생하니까 넉넉하게 출발하였다. 녹번역에서 만난 시 한 편, 내 마음을 그대로 시로 옮긴 듯하여 사진에 담았다. 금산에서 피정 생활을 하면서 줄기차게 파온 화두인 셈이다.주최측은 천여 명이 참석한 기도회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5~600 명 정도가 참여한 듯 하였다. 그런데 행진을 하다보니 정말 천여 명으로 늘어난 듯."다시는 군홧발로 국회에 돌아오지 말라!" 시국선언을 참가자 일동 명의로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나도 선언 주체의 한 사람이 되었다.기도회 후 행진은 종각까지만.행진하는 내내  "내란 수괴 체포하라! 윤석열을 체포하라!" 구호를 반복하였다. 앞글자..

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2024. 12. 8. 01:49
<국민의힘 의원에게 탄핵 동참 촉구 문자 보내기>에 동참하다

를 광고하는 메시지가 여기저기 SNS톡방마다 올라왔는데, 108명의 국힘당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클릭하여 문자를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더구나 뒤끝작렬할 놈들이 개중에 있어서 나중에 국정원같은 정보기관에 발신자들 전화번호를 넘겨 사찰을 명령한다면 그 뒤끝을 어떻게 감당하리오, 무식중에 떠오르는 불안감도 있었다.유투브로 보라고 동영상 링크를 전해주는 톡은 거의 무시하는 편인데, 그만큼 시간과 데이타를 잡아먹는 게 동영상이라서 생긴 습관이다. 그런데 108명에게 문자를 보내라니!  아무리 매크로로 자동화했어도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을지, 한가할 때나 가능한 일이지,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열심히 문자 매크로에 동참했다. 왜 나는 이런 귀찮은 일에 동참했나? 수신자인 국회의원들은 문자를 읽..

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2024. 12. 7. 10:07
난데없이 웬 계엄?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일기)

5일 합병증 검사 예약이 있어서 금산 피정지를 떠나 서울 집으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 오늘(4일)이었다.전기보일러 차단기가 자꾸 떨어져서 수리하고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오늘 새벽쯤 출발할 예정이었다.그런데 밤 10시40분쯤 카톡이 울렸다. 카톡 알림은 기본설정을 중지로 해 놓고 가족들만 켜 둔 상태라서 뭔일인가 들여다보니 막내아들이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했어요. 속보들 보셔요. ... 긴급 긴급"이라고 알렸고, 이어서 온가족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서로 위치를 확인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당부하느라 카톡 메시지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단톡방마다 카톡이나 텔레그램이나 메시지가 쌓이기 시작했다.11시 이후 통행금지라는 가짜뉴스도 나돌고, 국회앞으로 당장 모이자는 얘기들도 보이고... 금산에서 출발하면..

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2024. 12. 4. 11:23
선친(先親)에 대한 추억

울아버지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는 무능한 가장으로서 낙인 찍힌 분이셨다.폐결핵을 앓으면서 엄니의 무한돌봄으로 겨우 몸을 추스리셨는데,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는 잠시 출판사 서적 외판원으로 일하시다가 다시 그 일을 그만두시고는 친구분의 복덕방에서,나중에는 경로당에서 바둑으로 세월을 보내셨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회복하신 뒤에는 망상에 시달리셨고, 마지막에는 요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되었고 거기서 외롭게 생을 마치셨다. 한마디로 마누라 등쳐먹고 산 한량이라 할 수 있는 삶이었다.가장 기가 막힌 일은 일찌감치 국가유공자로서 요즘으로 치면 보훈가족으로 등록하여 온갖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온가족이 살게 하셨다는 것이다.사진에서 보는 모습은 1950년 전쟁 직전에 찍은..

삶의 고백/사진으로 엮는 자서전 2024. 11. 21. 22:42
금산 둘레길 7구간(마전~수영마을)에서 (2024.11.13)

며칠 전에 말을 타고 산길을 달리던 이들을 만난 뒤에 그들이 달리던 산길을 걸어보고 싶어 길을 나섰다. 알고보니 그 길은 금산군이 조성중인 금산둘레길의 일부였고 7구간 (마전시장에서 수영마을까지) 대략 15km 중에 목소임도, 약 4km 되는 길이었다.중부대학교에서 태조태실로 올라가 만인산 정상 못미쳐서 목소임도 방향으로 내려오면 민족자주통일비가 있는데, 민족자주통일비는 「 통일어머니의 설풍행려」라는 구술자서전을 남기신 정효순님이 사재를 털어 세운 비석이다.통일비로 가는 길은 태조태실 쪽에서 둘레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중부대학교를 가로질러 오르는 편이 더 편하고 쉬운데, 중부대학교 건원관과 범농관 사이에 안내표지가 서 있다.  이곳이 오늘 건강산책의 시작점이다. 건농관 옆을 따라 올라가는 길. 사진은 내려..

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2024. 11. 16. 18:20
어릴 때 살던 곳을 찾아서(반세기 전의 추억)

큰누님이 감을 수확해달라 해서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보문산 자락 대사동 옛날 살던 동네를 들렀다.보문산에서 내려오던 개천은 복개하여 도로가 되어버린 지 오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일단 차를 주차할만한 곳을 찾았는데, 옛날 제일인쇄소로 기억되는 넓은 집터가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었다.차 한 대가 통행할 만한 도로가 입구에서부터 옛날 대연각이라 불리던 당시 신흥주택가까지 직선을 뚫려 있는데, 옛날 우리집 앞집이었던 목선생네와 뒷집 남씨네 땅을 통과하여 제일인쇄소와 목선생네의 골목은 옛모습을 잃고 있었다.정원마당을 도로로 빼앗긴 옛날 우리집 앞집 목선생네집은 담장이 건물쪽으로 당겨져 있고뒷집 남씨네도 마당을 비스듬히 빼앗겨 'ㄱ'자로  막혔있던 골목이 시원스레 길로 뚫려 있었다. ..

삶의 고백/사진으로 엮는 자서전 2024. 11. 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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